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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우선주의를 강요하는 우리나라 축구기사에 대한 일침 (펌)

[홍재민의 축구話] 퍼거슨과 박지성은 악수를 했을 뿐인데

미디어윌M&B | 입력 2013.02.26 12:34

 

 

[포포투] 길을 걷다가 고등학교 은사와 마주쳤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안부 인사 드리며 악수를 나눠야 한다. 길을 걷다가 이전 직장 상사와 만났다. 어떻게 해야 할까? 또 안부 인사 드리며 안수를 나눠야 한다. 자연스러운 행동인데 행동 주체가 알렉스 퍼거슨과 박지성이다 보니 뭔가 다르다. 다른가?

퀸즈파크레인저스(이하 QPR)와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프리미어리그 27라운드를 가졌다. 리그 1위와 20위가 맞붙었으니 그 결과는 뻔했다. 맨유는 또 이겼고, QPR은 또 졌다. 다행히 우리에겐 퍼거슨이 있었다. 그는 경기 전 박지성과 악수를 나눴고, 그 장면은 뻔해져 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던 다음날 한국의 '해외축구' 섹션을 멋지게 꾸며줬다. 화해, 감동, 불안(레드냅) 등 다양한 해석과 반응이 뒤섞였다.

솔직히 '화해'라는 분위기 형성은 약간 생경하게 들렸다. 두 사람이 '화해'라는 단어를 쓸 정도로 어색한 관계였던가 싶다. 프로축구에서 이적은 배반이나 불화의 산물이 아니다. 맨유를 떠나기로 한 것은 어디까지나 박지성의 직업적 선택이었다. 퍼거슨과 박지성 모두 그런 생리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퍼거슨이 "너 빨리 나가"라면서 박지성의 옆구리 콕콕 찌른 것도 아닐 테고. '화해'라는 두 글자를 싸이와 김장훈에게 쓸 순 있겠지만, 퍼거슨과 박지성 두 사람에게 끼워 맞추는 것은 너무 '억지 춘향'식이다.

아마도 팬들은 이 장면에서 얼마 전 연출되었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퍼거슨의 포옹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대중은 현재보다 과거의 기억을 통해 스타를 바라본다. 백발의 스코틀랜드인 감독과 젊은 한국인 선수라는 겉모습보다 더 많은 것을 떠올린다. 찰나의 순간에서 화려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지난해 K리그 올스타전에서 박지성과 거스 히딩크가 연출했던 골 세리머니처럼 말이다. 그 한 장면은 한반도 국민의 가슴 속 시계바늘을 10년 전으로 되돌려 놓았다. 당사자들에겐 평범한 행동이 보는 이들에겐 의미심장하게 보였을지 모른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예언자 모하메트의 땀에서 장미향이 난다고 믿는단다. 퍼거슨과 박지성의 악수 장면이라는 시각 정보의 해석에도 수신자의 주관은 얼마든지 개입될 수 있다.

어쩌면 박지성이 품고 있던 '세계 최고', '대한민국의 긍지'라는 연상 이미지의 재발견일지도 모른다. 올 시즌 한국의 축구 팬들은 깊은 좌절감에 빠졌다. 박지성이 더 이상 '빅클럽' 맨유의 선수가 아니라는 심리적 박탈감은 매우 크다. 일종의 복수 심리처럼 카가와 신지의 부진에 한국 축구 팬은 뜨겁게 반응한다. 기성용이 잘해주곤 있지만, 그의 팀은 존재감 없는 스완지시티일 뿐이다. 손흥민은 아직 심리적 마이너에 해당하는 독일에서 뛴다. 그들의 활약 모두 맨유의 박지성이 뿜어냈던 거대한 아우라 앞에선 손전등일 뿐이다. 퍼거슨과 박지성의 악수에서 우리는 잊고 있던 판타지를 아주 잠깐이나마 다시 맛볼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퍼거슨이 먼저 악수를 청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하지만 그런 해석은 오히려 박지성의 진가를 정확히 알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박지성은 맨유에서 7년을 지냈다. 그 7년은 맨유-퍼거슨의 26년 체제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기였다. UEFA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만 세 번이나 올랐다. 프리미어리그를 네 차례 제패했다. 1986년 퍼거슨이 맨유의 지휘봉을 잡은 이래 그런 성공기는 없었다.

박지성은 그런 전성기의 주역이었다. 그는 세 번의 UEFA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두 번이나 선발로 나섰다. 그 사이 있었던 두 번의 FIFA월드컵에서 골도 넣었다. 요즘 말로 '손발 오그라들게' 우리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맨유의 박지성'은 이미 충분히 화려한 존재였다. 퍼거슨은 물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웨인 루니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한들 이상할 것 없는 그런 세계적인 선수란 뜻이다.

한국인 특유의 정서도 먼저 내밀어진 퍼거슨의 손에 열광한 이유 중 하나일 것 같다. 우리는 항상 외국의 칭찬과 평가에 목말라한다. 박지성, 손흥민, 기성용 등 한국인 선수들에 대한 고평가 외신은 여지없이 국내에 소개된다. '설레발' 취급 받는 국내 매체의 손흥민 관련 기사는 유럽 현지 매체의 간단한 언급만으로 일약 객관성을 획득한다. 반대로 일본이나 중국인 선수를 폄하하는 외신에는 노골적인 인종차별 폭언을 가하면서 통쾌함을 느낀다. 이 현상에 대해서 언론과 독자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민다. 하지만 뉴스 컨텐츠도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이다. 공급과 수요가 맞기 때문에 거래된다는 뜻이다.

물론 누구나 자신의 생각, 판단, 결심, 가치관에 대해서 타인의 공감과 동의를 얻고 싶어한다. 고래나 코끼리까지 춤추게 한다는데 칭찬 받아 나쁠 것 없다. 하지만 해갈 방법이 너무 외부 의존적이다. 아니,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칭찬을 구걸한다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치계에선 누가 먼저 악수를 청했는지가 민감한 사안일지 몰라도 퍼거슨과 박지성은 누가 먼저 손을 내밀어도 상관없는 그런 관계라고 생각한다. 먼저 내밀어진 퍼거슨의 손이 뜻하는 바는 순수한 반가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글=홍재민, 사진=SBS-ESPN 중계화면, Getty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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