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빠 되기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책임’이라는 말은 뭔가 부담이 된다. ‘책임’이라는 말에는 의무감이 연상되고 그 의무감은 때때로 자신을 짓누르기도 하고 잘해봐야 면피 정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더욱이 세상이 다원화되고 정보에 쉽게 노출되는 요즘에는 이것 저것 책임질 일도 참 많다. 생각해 보자. 돈만 벌어오면 됐지, 휴일에 집에서 좀 누워 있으려면 아빠의 역할에 충실 하라고 다그친다. 휴일에 아침상 차리기, 애들 태우고 학원가기 등 단순노동만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첫째 녀석이 요즘 학교에서 친구문제 때문에 고민이 있으니, 같은 남자로서 적극적인 조언을 해달라는 책임까지 온전히 떠 맡는다. 유별난 아빠의 행동이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정보의 공유가 완벽한 아파트 단지는 이러한 책임감과 행동의 수준을 지속적으로 높여준다. 아내와 아이들의 관심사가 많아질수록 ‘돈 벌어 오는 기계’적인 삶을 살았던 아버지 세대가 그립기도 하다. 근데 더욱 더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언제부턴가 신문 등의 매스컴에서는 이 망할 놈의 ‘책임’을 내가 일하는 회사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니, 기업이야말로 정말 돈만 잘 벌면 됐지 뭔 또 책임인가 의문이 확 생긴다. 내가 뭘 모르고 있는 건가? 세상이 정말 변한 건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 무슨 뜻이지?
좋다. 사회생활도 할 만큼 했고 이 정도 용어는 바로 알 수 있다고 치자. 어떤 사람은 사회공헌활동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것이고, 환경을 고려하는 경영활동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다. 혹자는 이익창출과 고용이 가장 중요한 사회적 책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좀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회적인 여러 가지 문제들인 환경, 인권, 복지, 상생, 동반성장, 사회공헌, 착한 소비, 자원고갈, 심지어 4대강 사업 이후의 문제인 정치적 이슈까지도 사회적 책임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근본적인 궁금증은 여전히 남는다. 왜 책임을 져야 하지? 여기에는 엄청난 오해가 있다.
영어로 책임이라는 말은 responsibility 와 accountability 라는 용어가 있다. 사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은 외국어다. 영어로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이며, 번역하니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다. 왜 responsibility를 썼을까? Accountability는 요구되는 의무에 대한 책임으로 강제성이 있으나 responsibility는 자발적인 책임감을 의미한다. 그렇다. 첫째,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는 기업 ‘스스로’ 책임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누가 우리 회사에게 책임을 강요하기 이전에 우리 스스로 책임질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는 의미다. 직관적으로 우리가 알 수 있는 여러 환경, 사회문제들에 대해 사실 적극적으로 생각해 봐야 한다.
둘째, 여기에는 이론적인 근거가 있다. SWOT분석의 틀을 처음으로 제시한 경영학자인 케네스 윌리암스는 이미 1960년대에 주장했다. 인간과 달리 기업은 자연으로부터 인격을 부여 받은 게 아니라 사람들이 구성하고 있는 국가, 사회가 제정한 법률에 근거하여 법인격을 부여 받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갖고 있다고. 덧붙여 현실적인 자본주의 시장은 완전경쟁시장이 아니고 기업이 시장에 큰 영향을 직접적으로 미치게 되므로 이윤극대화를 넘어서는 적극적인 사회적 책임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어떻게 하란 말이지?
이렇게 보니 위의 두 가지 견해가 상충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겠다. 자발적 책임이라고 하면서 기업은 태생적으로 책임을 가지고 있다니, 하지만 역시 오해는 금물. 윌리암스의 견해는 본질적인 의미에서 기업의 책임으로 이해할 수 있고, 2010년대 오늘날까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자발적인 책임의 범위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기업이 자원문제에 신경도 안 썼는데 지금은 많은 회사가 자발적으로 자원문제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고 경영을 하는 경우다.
우리는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자발적으로 고려하는 이슈를 다른 회사는 무시할 수도 있다. 자발적 책임은 결국 어떻게 이를 활용하는가에 따라 마이클 포터가 말하는 차별화 우위로 핵심역량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경영전략 이슈가 된다. 실제로 1960년대의 윌리암스도 사회적 책임을 포함하는 경영의사결정이 전략수립의 기본이라고 했고, 포터는 최근에도 CSR을 고려하는 경영전략에 대한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
자, 다시 신문을 들여다 보자. 우리가 매스컴에서 접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용어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경영전략, 경쟁우위의 기반으로 이를 설명하고 있는 목소리는 매우 적다. 많은 경우가 사회공헌활동과 혼동하여 사용할 뿐이다. 매스컴의 무식한 용감함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우리는 앞서 제시한 많은 이슈들을 경영전략의 차원에서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더 나아가 환경, 사회의 다양하고 세밀한 이슈를 새로운 성장의 모멘텀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CSR이다.
그리고…
나는 돈 벌어 오는 역할 뿐 아니라 가사노동, 자녀들의 상담자 역할 등을 몇 년째 하다가 얼마 전 이 역할을 즐기기로 마음 먹었다. 전략적 의사결정을 한 것이다. 난 ‘태생적’으로 모든 가족 일에 ‘responsibility’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다 보니, 아내에 비해 애들에게 경쟁우위가 생기고 있는 것을 느낀다. (이 글 윗부분에 언급한 모습은 내 모습이 결코 아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한 번 시도해 보라. 좋은 아빠, 될 수 있다. 그리고 CSR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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